‘사람의 아들’ 을 30년 만에 다시 읽었습니다. 종교에 대한 질풍도노의 고민이 있었던 20살 시절에 읽었던 소설입니다. 종교에 대한 회의가 큰 요즈음 갑자기 오랜전 소설을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오늘은 근 20년 만에 다시 읽은 소설 ‘사람의 아들’ 감상문입니다.

‘사람의 아들’ 종교를 찾아 떠나는 주인공의 여행
‘ 사람의 아들’ 은 이문열 작가의 1979년작 소설입니다. 처음 소설은 분량이 짧은 중편 소설이었는데 이후 증편되어 출간되면서, 작가 이문열을 당대 ‘최고의 솟설가’ 라는 찬사를 듣게 만들어준 작품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아들’로 출판된 후에도 세번의 개정판이 출판되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소설로 자리메김하게 되었습니다.
줄거리
소설의 주요 내용은 종교란 무엇인지에 대한 주인공들의 의미 찾기 여행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인공 남형사, 민용섭, 또 소설속 또다른 소설의 주인공인 ‘아하츠 페레츠’를 통해 인간의 종교, 정확히는 ‘기독교’ 의 의미와 그 기원을 고민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요섭이라는 신실한 신자(?) 죽음을 조사하며 살인을 추적하는 남형사의 이야기가 메인 이야기로 진행되며 그 이야기 속에 엑자 소설의 형식으로 예수님과 동시대를 살고 간 ‘아하츠 페레츠’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예수님과 거의 동시에 예루살렘에서는 ‘아하츠 페레츠’ 라는 유대인이 탄생합니다. 위대한 ‘랍비’ 가 되기를 바랬던 아버지의 바램과는 다르게 유대인들의 신인 ‘야훼’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시작합니다.
이후, 야훼의 본 모습을 찾기위해 이집드, 바빌론, 인도, 로마 등을 여행하며 신이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 두 번째 소설속의 소설의 주요 내용입니다.
아하츠 페레츠를 톨해 민요섭의 살인 사건의 전말을 찾아가는 것은 메인 소설의 줄거리 입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처음 이 소설을 읽은 것은 군대에서 였습니다.
당시, 열심히 성당을 다니다가 입대한 차라 종교적 신심이 남달랐던 시기였는데, 이 소설은 큰 충격으로 다가 왔습니다.
제가 믿고 있던 하느님에 대하여 그 기원을 찾아 헤메는 주인공 ‘아하스페레스’의 모습은 당시 제 종교적인 관념으로는 충격이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작가 이문열은 천재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생각을 1도 하지 않습니다.)
유럽지역에 구전으로 전해지는 ‘방황하는 유대인’ 의 전설을 이렇게 멋진 이야기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소설 속 등장하는 유대교, 기독교의 기원속 고대 종교와의 연관성, 사람들이 믿는 신들의 관계 등을 읽어가면 갈수록 작가의 상상력과 그것을 이야기로 만드는 능력에 감탄 또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종교란 무엇일까?
이 소설의 주제이기도 하고, 제가 이 책을 읽는 동안 끊이지 않고 고민하게 되는 의문이기도 합니다.
‘종교는 힘없는 인간의 의지를 위해 만들어진 가짜야”
얼마전 성당을 나가지 않겠냐는 내 의견에 중학교 2학년 사춘이 아들이 던진 답변입니다.
이성의 힘을 추구하는 사춘기 시절에 어찌보면 너무나 정확한 답변이라고 할 수 도 있겠습니다.
“살다보면 알게되, 가끔은 우리 이성으로 알 수도 없고 극복할 수 도 없는 일이 왕왕 생기거든”
이성과 지성에 대한 갈망이 전투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사춘기 아들의 질문에 대한 제가 한 답변은 궁색하기 이를 때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나 자신도 아직 그 답을 완전히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아하츠 페레츠’ 가 소설 중반까지 했던 이 질문은 그렇기에 오늘까지도 유요한 질문이 아닌가 합니다.
특히, 요즘처럼 거리에 나와 마치 광인처럼 종교적인 광기에 물든 사람들을 보며 다시금 종교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안할 수가 없습니다.
“종교란 무엇일까요?”
왜 레반트 지역일까?
여담이지만 소설속 소설의 배경인 유대지역, 더 정확히는 레반트 지역으로 일컬어 지는 근동지역입니다.
지금의 근동, 중동의 이미지는 ‘분쟁’과 ‘석유’로 대표되는 것에 대비하면 조금은 놀랍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관련 책을 읽고, 여러 가지 관련 영상을 보며, 바로 레반트 지역이 왜 인류 문명이 시작지점이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습니다.
굳이 ‘총.균.쇠’ 와 같이 훌륭한 책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그곳 환경이 인간이 문명을 만들기 좋은 곳이였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합니다.
물과 물이 만나는 비옥한 토지, 일년동안 온도차가 크기 않는 적당한 기후 (우리 생각보다 그곳의 기후는 사막이랑 다릅니다.)
우리나라 처럼 온 국토가 산으로 둘러 쌓여 있지도 않고, 토질이 안좋아 농사가 어려운 환경도 아닙니다.
(그에 비하여 우리 한반도는 너무나 험합니다. 앞서 서평을 남긴 ‘한국인의 탄생’ 부분을 참고 하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이곳의 발달된 문명은 이집트, 지중해, 유럽과 인도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하니, 이곳에서 다양한 종교가 시작되고 여러 종교가 뒤섞인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글을 마치며
오랜만에 독서 감상문을 남겨 보았습니다.
특히 어릴 때 읽었던 ‘사람의 아들’ 을 다시 한 번 읽어보며 역시, 명작이란 그 감동이 오랜 기간 변함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의문, 과연 인간에게 ‘종교란 무엇일까’ 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람의 아들’ 감상문 끝